심대평은 대한민국의 전직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충청남도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상 최초로 민선 3선을 달성한 충청남도지사(1995~2006)로, 한때 충남권의 맹주로 불리며 지역 정치를 이끌었는데요. 지금은 장남 심우정 검찰총장 때문에 주목받고 있습니다. 심대평 프로필에 대해 알아봅시다.
심대평 프로필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은퇴 후 지역 후배를 돕는 후원회장까지, 심대평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1. 학창 시절과 관료 생활의 시작
1941년 공주에서 태어난 심대평은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요.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한 그는, 박정희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에서 근무하며 관료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의정부시장과 대전시장을 역임하며 행정 경험을 쌓았는데요. 특히 대전시장 시절(1980년대 초반)에는 지역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며 주목받았습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관선 충청남도지사(1988~1990)를 지냈고, 이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하며 중앙 무대로 진출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약 2년간 충청남도지사로서 지역 행정을 이끌었고, 이는 훗날 민선 도지사로서의 성공을 예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민선 도지사 3선: 충청의 맹주로 우뚝 서다
심대평의 정치 경력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그는 51.3%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민선 1기 도지사로 취임했습니다.
이어 1998년 제2회 지방선거(득표율 54.7%)와 2002년 제3회 지방선거(득표율 49.8%)에서도 승리하며 사상 최초로 민선 3선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2002년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후보 중 유일한 당선자라는 기록을 세웠어요.
당시 전국 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단 1명(심대평)만 당선될 정도로 열세였기에, 그의 승리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11년간(1995~2006) 충청남도지사로 재임하며 그는 지역 발전과 충청권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3. 국회 진출과 정당 창당: 국민중심당의 탄생
2006년 자유민주연합이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자, 심대평은 이에 반발하며 탈당을 선언했습니다. 같은 해 1월, 그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국민중심당을 창당하며 독자 노선을 걸었는데요.
2007년 대전광역시 서구 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중심당 후보로 출마해 한나라당 이재선을 52.1% 대 45.6%로 꺾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열린 우리당의 와해와 반한나라당 연대 덕분에 범여권 단일 후보로 나선 점이 승리의 배경이었어요.
같은 해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국민중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득표율 0.5% 미만을 예상한 여론조사와 이회창의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사퇴했는데요. 이후 2008년 이회창과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며 국민중심당을 흡수 통합했습니다.
그해 제18대 총선에서 충청남도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해 53.2%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국회에 재입성했습니다.
4. 갈등과 분열: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
자유선진당 시절, 심대평은 이회창와의 갈등으로 당을 떠나게 되는데요. 2009년 ‘충남지역 총리 지명설’을 둘러싼 의견 충돌과 이회창의 독선적 운영을 비판하며 국민중심연합을 창당했으나, 2011년 복당 했습니다.
복당 후 자유선진당 대표에 올랐지만, 당내 불화는 계속되었고 2011년 한미 FTA 비준안 표결에서 그는 보수 정치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반대표를 던졌으며 이는 그의 정치적 신념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대표로서 선거를 지휘했으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당은 비례 득표율 3.1%로 간신히 원내 정당 지위를 유지했으며, 지역구 당선자는 3명, 비례대표 2명에 그쳤습니다.
심대평 본인도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민주통합당 이해찬(득표율 58.3%)에 밀려 39.7%로 낙선했습니다. 세종시 건설에 기여한 이해찬과의 대결에서 초반부터 열세였던 그는 선거대책본부를 세종시로 옮기는 등의 실수를 범하며 패배를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5. 정계 은퇴와 이후 행보
2012년 심대평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자유선진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되자 그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제18대 대선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는데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그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하며 약 4년간 지방자치 발전에 힘썼고 동시에 건양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내며 후학 양성에도 기여했습니다.
2017년 위원장직 퇴임 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심대평은 관료 시절부터 정치인으로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충청권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민선 3선 도지사라는 기록, 국민중심당과 자유선진당 창당, 국회 활동 등 그의 행적은 대한민국 지방자치와 보수 정치의 한 축을 보여주는데요.
비록 말년에는 당내 갈등과 선거 패배로 빛이 바랬지만 충청 정치사의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나이 고향 학력 프로필 딸 채용
박찬진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충청북도선관위 사무처장, 중앙선관위 조사국장, 사무차장 등 선관위 요직을 두루 거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선거전문가입니다. 장관급 공무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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